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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치트키

신은 절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말에 대하여

by 쀼? 2020.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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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공부(영성공부, 마음챙김 등... 딱히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자기계발이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고요)에 관련된 영상을 보면, 끌어당김이나 소원을 비는 기도에 대해 어떤 마인드 힐러들은 기도나 끌어당김으로 소원을 이루기 어렵다고 합니다. 

기도로 소원을 비는 것이나 심상화 등을 이용하여 끌어당김을 하는 것은 내가 그것이 없다는 현실을 더 강조해서 무의식에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끌어당김을 할 때는 "긍정형, 완료형 문장" "생생한 느낌"을 쓰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신과 나눈 이야기"라는 책을 아직 읽어 보지는 못했는데 여기저기 귀동냥으로 들어본 내용을 종합해 보면, 신은 어떤 특정한 존재 예를 들어 하나님이라는 존재처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 신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유기체인 내 몸과 내 생각은 신의 "껍데기" 같은 거고, 내 생각과 신체를 조정하는 정신, 다시말해 내 "영"이 바로 신입니다.  

내가 자각하든지 못하든지 나는 신입니다. 신은 나의 자유의지를 철저히 존중합니다. 내가 나한테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을 허락하여 들어주는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것으로도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윤미솔 이라는 작가의 "초대" 라는 책이 있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기도의 힘에 대해 말합니다. 제대로 된 기도의 방법을 몰라도 일단 기도를 하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좋다고 합니다. 신은 내 기도에 당연히 응답해 주는 존재라는 굳은 믿음이 있기에 종교인의 기도가 옳건 그르건 응답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 결국 의심 없는 믿음이 치트키 인 거네요. 참고로 저자는 소원을 빌 때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서원도 같이 하여 꼭 지키라고 조언합니다. 


기도로도 심상화로도 당연히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나 이거 필요하니까 주세요, 없으니까 주세요" 떼 썼는데도 주십니다. 진짜 간절해야 해요. 그리고 그 기도를 들어 주실 거라는 무한한 신뢰가 있어야 하고요. 

제가 살면서 그런 경험을 두 번 해 봤습니다.  

그 기도를 하면서 기도를 들어 주실까 의심 자체가 안 됐어요, 너무 간절해서. 

그 응답 과정이 정말 신기하고 또 드라마틱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게 어떻게 가능했지? 싶어요. 

부연설명을 하자면, 내가 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나님이라는 집단무의식이 만들어낸 전능한 존재에게 기도를 했지만, 내 무의식과 감정을 바꾸는 결과가 되어 "현실창조" 효과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사실 제게는 늘 바라는 소망이 있는데 이런 소원도 소원이라고 빌어도 되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해서 그런지 제자리 걸음이에요. 

그것들 말고도 소원은 많지만 이상하게도 간절한 느낌이 생기지가 않습니다. 


그럴 때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의 원리에 맞춰서 좋은 기분을 유지하려 애쓰고, 속으로 계속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뒤로 조금씩 천천히 신기한 일이 생기고, 지독한 궁핍감과 결핍감에서 벗어났으며 마음이 넉넉해졌습니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놀랍게 좋아졌습니다. 

로또 1등 당첨의 소원이 지금은 희미해졌습니다.  

그 때는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는 게 아니면, 길이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소원은 비는 것이 아니라 신(자아)에게 명령하는 것
명령하는 방법은? "텅빈 마음"에서 오는 평화


지금과 달리 어설프게 끌어당김을 이해했을 때에도, 감정을 실어서 심상화를 하면 효과가 있었습니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초강력 치트키 "감정"

정말 "저주캐"로 소소한 운조차 없었는데 심상화를 하고 나서 당첨이 되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생각난 김에 또 시도해 봐야 겠습니다. 게임에서 제가 원하는 아이템을 뽑아서 완전 신나는 상황을 연출하려고요. ㅎㅎ;; 작고 쉬운 것부터ㅋ 


그러나 믿음을 담은 기도나 감정을 실은 심상화는 운명을 바꾸는 본질이 아니라 부수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명을 바꾸는 방법은 마음을 비워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쁜 것의 분별심을 버리는 것(분별심을 버려야 마음이 비워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에서 오는 평화, 행복이라고 보고 있는데요. 

마음을 비우기 위해서 명상, 알아차림(관찰자 모드)을 하고 무의식 변화시키고 깨달음을 얻는 활동 등을 하며 수련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주제였던 기도나 심상화는 무의식을 변화시키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소원을 이루는 방법은 기도나 끌어당김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는 거라고 봐도 되겠죠. 


마음공부를 하고부터 성경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었는데 다시 성경을 읽으면 예전보다 훨씬 큰 느낌을 받을 것 같습니다. 

요즘 심리상담 교재를 읽고 있는데 프로이드, 융, 로저스, 게슈탈트, 실존주의 이론 등에서 예전에 못느꼈던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제자가 준비 되면 스승이 찾아온다라는 말이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리고 나는 안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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