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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이야기s/구스렁구스렁

가난한 아빠와 빨간 색깔 딸

by 쀼? 2010.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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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우리집은 가난했었고~♪

우리 아빠 고향은 충청남도입니다. 연세는 환갑이 지난 지 몇 년 되셨습니다.
아빠는 유교에 영향을 받아 내가 어릴 때 나를 '우리집 장남'이라며 친구분께 소개하는 바람에 초딩 때부터 양성평등과 남녀차별에 눈을 뜨게 하신 분입니다. (절대 내가 남자애처럼 생겨서 그런 건 아니예요!!!)
"아빠. 나는 딸인데 왜 장남이라고 그래?"
갓 열 살이 넘은 딸의 개념 있는 질문에 아빠는 제사를 지내줄 아들이 없기에 첫 딸이 그 역할을 대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랬다고 했고, 지금은 그런 일들을 기억도 못하고 계시지만, 딸 셋만 있는 집안에서 "딸"이기에 느낄 수 있던 차별을 여러 방면에서 느끼며 자랐습니다. 아빠와 나는 어릴 때부터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청소년이 부모의 행동과 태도를 판단하고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부모에게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저도 그랬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는 등 나쁜 사람은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 눈을 의식해 체면과 겉치레에 신경쓰는 아빠가 잘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는 아빠와 자주 다퉜습니다. 

내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는 반공교육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공 만화를 보여주는데, 그 만화에 나오는 북한 군인은 이가 뾰죽하고 날카로운 늑대 인간이었습니다. 어릴 땐 정말 북한에 사는 사람들은 늑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에게도 반공은 국민을 단결시키는 큰 이념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때마다 '북풍'이 불어와 '보수'가 더 단결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곤 했습니다.
북풍이 불건 말건 아빠는 소위 '보수' 지지자였고, 조선일보를 보았으며 엄청난 지역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은행원이었던 아빠는 IMF 때 명예퇴직을 했고, 이러저러한 고난과 위기를 겪고 지금은 한가한 마을에 작고 한가한 구멍가게를 하고 계십니다. 초대형 마트가 생긴 영향이 여기까지 미쳐서 하루 종일 한가하네요. 아빠는 초대형 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는 푸념은 하지만 이게 정책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생각해 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본이 부족한 아빠 가게가 잘 안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침부터 뉴스에는 삐리리당을 지지하는 듯한 분위기를 전합니다. "삐리리당 망해라~"고 잠에 덜 깬 목소리로 응원을 하는데 그 소릴 들은 아빠는 감정을 담아 말합니다.
"삐리리당이 왜 망해? 지지율이 60%인데. 말이 되는 소릴 해."
그 전날 우리 부부와 동생네 부부가 아빠네 집에 모였는데 두 딸이 삐리리당을 아직도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아빠를 비판했던 게 마음에 남았었나 봅니다.
"너, 어디 가서 정치 얘기하고 종교 얘기는 하지 마, 싸움 나."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고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서 남 탓 한다고 뭐가 달라져?"
뭔가 그럴듯한 말과 의식으로 잘 포장되어 있어 어디부터 반박을 해야 하는지 난감했습니다.
"아빠, 이 사회가 노력한 만큼 댓가를 얻기가 쉬운 사회야? 벌써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는 지나갔잖아."
"그렇다고 ㅇㅇ당을 찍냐? ㅈㄹ도는 빨갱이인데?" "네가 전쟁을 안 겪어봐서 모른다. ㅉㅉ"

쿠궁......

아빠에게 크리티컬 데미지를 받았습니다. 정말 황당해서 아무 말 못하는 내게 공산주의를 편들어 다같이 못살자고 하냡니다. 사실 난 ㅇㅇ당 지지자도 아니고 ㅇㅇ당이 진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공산주의를 신자유주의 만큼 싫어하는데... 나더러 빨갱이라니요, 억울합니다. ㅜ.ㅠ 딸에게 빨갱이라는 말을 할 만큼 아빠는 나이를 먹어 판단이 흐려졌기도 하고 나이 많은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질 않는가 봅니다. 
 "너도 정신차리고 열심히 노력하고,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봐라. 앞으로 신 노예 제도가 나타날 거라는데."
원래 귀가 얇은 사람이 가족 말은 잘 안 듣죠. 노예 시대가 오기 전에 기득 세력에 끼어드는 게 중요한지, 노예 시대가 오지 않게 단결하는 게 좋은지...
 "아빠... 지금도 노예 제도와 크게 다르지 않거든..."
여기서 가난한 아빠와 빨갱이 딸의 얘기는 멈췄습니다.
누가 왜 우리 아빠같은 사람들 머리속에 저런 생각을 주입시켰을까요. 아빠 눈엔 내가 얼마나 바보 같고 안타까워 보일까요.

아빠하고 대화를 나누며 얻은 생각은 한 가지입니다.
6월 2일,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나는 꼭 남편이를 데리고 투표하러 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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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실명제 컨퍼런스. 이틀 남았군요...; 네티즌의 주권찾기 운동의 하나라고 합니다.
내용을 자세히 보시려면 ☞ http://ournet.kr/xe/blog
권리는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니라, 노력해야 얻는 것입니다. 움직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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